블로그 이미지
Debby콩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22. 2. 28. 01:22 카테고리 없음
반응형

정리를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정리란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정돈하는 행위 라고 한다면, '정리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지럽혀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연히 열었던 책상 서랍 안에는 조각조각 떨어져 있던 지난 날의 파편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본다.
짧게는 지난 주, 길게는 15년 전 까지 우리가 나눴던 단어들, 문장들, 그림들이 얇은 2차원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소유하는것에 대한 강박이 전혀 없는 내가 딱 하나 수집하는 것이 있다면, 좋았던 과거 또는 지난날의 나를 반추하게 하는 타인으로부터 온 기록에 대한 흔적이다.그 흔적에는 기록한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소 강박적으로 소유하고 있지만 일상적이지는 않은 이 흔적을 마주할 때 마다, 그 흔적들을 자청하여 지녀 온 사람은 만감이 교차한다. 그 만감이란 것은 시간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어서 몇 일 몇 달 몇 년이 지나서 다시 꺼내 볼 때마다 생경한 질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너무 많이 떼 본 나머지 편지 봉투를 봉했던 스티커의 끈끈이가 다 닳아버렸지만 그 안의 문장들을 마주하는 지금의 느낌은, 도무지 닳지를 않는다.

당시 내가 있었던 시공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고
당시 당신의 시공간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그 두 시공간이 지금 이 순간에 어찌 받아들여지건간에 그를 마주하는 나는 소름이 돋거나, 웃음이 나거나, 눈물이 나거나 아니면 그 세가지 모두이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흔적은 없었다. 아무렇지 않지 않아서 이제껏 정리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ㅡ

아무렇지 않지 않지만 강박적으로 쥐고 있었던 몇몇개의 흔적을 다시 읽어내려가면서, 두개의 시공간을 반추하는것이 나에게 또는 그들에게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이것은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써 주었던 그들의 마음을 마주할때 교차하는 나의 만감이란 것이 또 한번 자라났기 때문이란것을 알았다.
아무렇지 않지 않지만, 마음의 흔적을 수집하려는 강박에서 놓아 줄게. 이 '아무렇지 않지 않음'은 내 마음에 고이 둘테니,

그렇게 몇몇개를 정리하고 나니 서랍에 조금 여유가 생겼는데 그 광경이 아쉽고 헛헛하고 아름답고 대견하고 보기 좋더라, 앞으로 의미 없을 나의 강박, 앞으로 물리적으로는 마주하지 못할 지난 날의 반짝임이,

그래. 참 보기 좋더라.

반응형
posted by Debby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