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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2. 04:49 Re-View/연극/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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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8 ~ 2013/09/08

@ 백암아트홀

관람 cast / 조승우, 조진아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아는 그 뮤지컬 <헤드윅>. 내 생애 첫 헤드윅은 2011년 8월 어느메에 봤던 드윅, 조정석의 헤드윅이었다. 너무 뽀얘서 '뽀드윅'이란 애칭이 붙은 그는 나에게 그야말로 새하얀 섬광같은 충격을 주었더랬다. 첫 관극때 내가 느꼈던 키워드는 [절대적 존재 / 삶 / 사랑의 종류] 에 관한 것들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단순한 트렌스젠더라는 호칭이 부족한 그 존재 헤드윅에게 완전히 홀려 두시간 남짓 되는 시간들동안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첫 관극을 시작으로 나도 헤드윅을 열혈 관객이 되었고 그 다음 시즌 오만석의 헤드윅 오드윅, 그리고 이번 시즌 조승우의 헤드윅 조드윅까지 회전문 회전문 그런 회전문이 없도록 팽팽 돌았다.

 

사실 헤드윅을 보고서 장문의 리뷰글을 남겨본 적이 없다. 쓸 말이 너어어어어어무 많기도 하고, 커다란 주제를 배우와 밴드가 그날그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때로는 메시지, 내용까지도)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 매일 달라지는 그 요소들은 오롯이 마음속에 품고 앓는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헤드윅들이 전달해 준 그 감정들이 휘발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리고 이 안타까움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뮤지컬 헤드윅은, 헤드윅을 필두로 한 앵그리인치 밴드가 리버뷰(River View) 모텔의 지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관객들은, 뮤지컬 관람객이 아닌 헤드윅의 공연을 보러 내려 온 리버뷰 모텔의 투숙객으로 설정된다. 실제로 콘서트 혹은 라이브 공연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 반응 정도가 극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어떤 공연들도 그렇지만, 특히 <헤드윅>은 온전히 같은 공연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같은 헤드윅의 공연을 보더라도 항상 다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그 많은 헤드헤즈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헤드윅 그리고 토미

 

(사실 이 포스팅을 하는 건 조드윅을 만난 충격을 적기 위해서,였는데 얘기가 많이 길어졌다.)

개인적인 <헤드윅>의 관전 포인트는 헤드윅과 그가 키운 락스타 토미 노시스와의 관계이다. 토미가 음악적으로 성장하기까지 서로 정신적으로 교감한 헤드윅은 마침내 토미가 그녀의 반쪽이라고 확신한다. 토미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순간, 성전환 수술의 실패로 어찌보면 반만 여자인 헤드윅의 정체를 알아버리는 토미. 그에 대해 헤드윅이 대처하는 자세, 그리고 리버뷰 모텔 건너편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 동시간에 공연하는 토미가 헤드윅에게 바치는 노래가 들리고 헤드윅이 퇴장하기까지 감정선이 쭉 이어진다.

 

토미와의 트레일러씬부터 헤드윅이 퇴장하는 맨 마지막까지의 이 부분에서 극의 메시지가 정리된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 헤드윅마다 굉장히 다르다는 것인데, 각 헤드윅의 방식대로 쌓아온 감정선들이 여기서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조드윅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앞서 만났던 두 헤드윅의 노선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

 

앞서 만났던 뽀드윅, 오드윅에게서는 사랑, '멜로'적 요소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토미에게 날 사랑한다면 내 치부까지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헤드윅에게서 토미는 얼버무리며 도망치듯 사라져버린다. 훗날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 헤드윅이 만든 노래 'wicked little town'을 부르는 토미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헤드윅이었다. 당시 헤드윅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던 토미가 이제야 헤드윅을 이해하고 그녀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 그 노래를 듣고 비로소 상처를 극복하게 된 헤드윅, 그 풍파를 견딘 헤드윅이 관객에게 맨 마지막 넘버인 'midnight radio'에서 지지마라 포기마라 외쳐주는 모습은 힐링 그 자체였다. 토미라는 인물은 '상처'의 메타포 일 뿐, 상처입은 한 존재가 오롯이 서는 과정을 그린 성장 뮤지컬 같다고 해야 하나, 나에게 조드윅을 만나기 전 헤드윅은 그랬다. 비로소 바로 선 그녀는 행복했습니다 해피엔딩 이렇게.

 

그러나 조드윅은 위 두 헤드윅과는 전혀 노선이 달랐다. 너무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반쪽이라고 생각한 토미에게 차마 자신의 치부까지 사랑해달라고 하지 못한다는 헤드윅. 자신의 치부를 '일부러' 토미에게 보여주고는 역겹지 않느냐고 솔직히 말해달라는 헤드윅. 그런 헤드윅에게 토미는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토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제 됐다고 가라고 떠나보내는 헤드윅. 그게 조드윅의 노선이었다. 세상의 풍파가 둘을 갈라 놓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진정한 하나됨, 믿음, 즉 완전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지.

 

.....

운명이란 없는거야

사실은 바람만 있는 하늘처럼

오묘한 마법도 없고 영원한 사랑도 없어

보이지 않는 걸 찾을 순 없어

이제는 받아들여 봐요 당신 존재의 이유를

두려워말고 건너요 wicked little town

('wicked little town' 가사 中)

 

한시도 헤드윅을 잊지 않았을 것 같은 토미가 'wicked little town'을 부르는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같은 노래인데 어쩜 그렇게 앞서 본 두 헤드윅들과 다르게 들리는지..

 

 

#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 조드윅

 

다른 곳에 있어도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이 곧 완전한 사랑이라는것이 조드윅이 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마지막 넘버 'midnight radio'도 당연히 다른 헤드윅들과 다르게 들린다. 조드윅은 보고 나면 힐링이 되는것이 아니라 되려 마음이 무거워진달까.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걸 아니까. 조드윅에게서는 토미를 향한 강같은 사랑만 느껴지는것이 아니다. 토미 그리고 풍파어린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와 상처도 매우 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반쪽'에 대한 믿음으로 그 상처를 보듬어 안고 나가는 것이 문제의 해법임을 알고 있지. 하지만 쉽지 않아, 사랑이란 건 달콤하기만 한게 아니야. 사랑은 삶 그 자체야.

 

퇴장했던 이츠학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와 미드나잇 라디오를 이어 부르면, 헤드윅은 손들고 있는 관객들 사이로 비척비척 걸어나간다. 완전한 사랑을 얘기하지만 헤드윅은 여전히 불완전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완전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愛)과 증오(憎) 모두 업고 가야 한다. 마치 정반합의 원리처럼. 토미에게 "I love you, but I hate you.." 라고 되뇌이는 헤드윅이 正이라면 토미는 反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속박과 자유,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같은. (이 부분은 첫 넘버인 'tear me down'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하다. 헤드윅이 그 장벽 위에 서있다면서, 그녀는 자신이 처절히 부숴지기를 갈망한것일지도 모르겠다.)

 

 

+ 조드윅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조드윅 볼 때 마다 (언젠가 반드시 따로 포스팅 할) '조승우'라는 배우에게 혀를 내둘렀다. 무대에서 아주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딱 맞다. '조승우 콘서트를 온건지 뮤지컬 헤드윅을 보러 온건지 모르겠다'고 하는 후기들이 종종 보이는데, 당연하다. 조승우 헤드윅의 콘서트니까. 그 어떤 헤드윅보다도 조드윅은 극에 객석을 끌어들인다. 관객참여 이벤트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관객도 무대 위 연기자의 일부처럼 취급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로 '객석'과 '무대'를 분리시켜 얘기하자면, 조승우의 <헤드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객석까지 모두 무대에 올라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의미의 '객석'은 무엇이냐? 집에 돌아가며 <헤드윅>을 곱씹는 관객들, 그들이 바로 '객석'이 된다.

 

조배우가 가진, 특히 뛰어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극의 상황을 이해시키는 몸짓과 그만의 대사처리 (혹은 애드립) 는 <헤드윅>과 완전한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사실 다른 헤드윅을 먼저 만나고 조드윅을 만난게 참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 조드윅을 가장 처음 만났다면, 어떤 의미로 '헤드윅'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생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헤드윅을 보는 게 힘들었을지도..

 

 

# 당신이 보는 그 순간만 존재하는, 당신만의 헤드윅

 

이렇게 삶에 대한 철학적이고 거창한 이야기를 관객들을 대면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내는 작품 <헤드윅>은 분명 마스터피스다. 영화나 뮤지컬 <헤드윅>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주옥같은 넘버들 또한 이 작품의 자랑거리. 풍부하디 풍부한 라이브 락앤롤 사운드에, (실제로 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앵그리인치 밴드의 라이브 연주의 황홀함을.) 거의 '원맨쇼 형식'으로 진행되는 헤드윅 역을 맡은 배우의 기량을 흠뻑 느끼기에는 이 작품만한 뮤지컬이 없다고 본다.

 

관객과 헤드윅, 그리고 앵그리인치 밴드의 미묘한 호흡의 어긋남과 일치를 반복하면서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뮤지컬 <헤드윅>의 포스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본 몇 회차의 공연들 말고도 다른 감정선이 많이 많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맨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같은 회차의 공연을 보아도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천차만별이라 함께 씹고 뜯고 맛보는 재미가 있는 극이랄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보고있는 헤드윅은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보는 그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헤드윅이라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헤드윅>을 본 당신이 무엇을 느꼈던 그건 100% 다 옳다. 그건 온전히 당신만의 헤드윅이니까!

 

 

다른 헤드윅들이 너무나 궁금하다. 지금까지 세 헤드윅밖에 못 만난게 참 아쉽고 아쉽다. 앞으로도 계속 다른 헤드윅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은 얼마 남지 않은 이번시즌 헤드윅이 너무 아쉽다.. 송창의 헤드윅 짱드윅도 궁금한데.. 아......

 

아무튼.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이브로부터, 토미가 헤드윅으로부터 그랬던 것 처럼, 뮤지컬 <헤드윅>을 관람하며 나도 '지식의 사과'를 받는 느낌이다. 한 회 한 회 인생을 느끼는 세포를 깨우는 사과! 

 

아 <헤드윅>, 또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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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3. 8. 14. 02:16 Re-View/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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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블루 Le Grand Bleu (1988)

뤽 베송 감독

장 르노, 장 마크 바, 로잔나 아퀘트

 

 

 

 

내가 본 것은 최근에 개봉한 리마스터링 감독판. 이 영화의 나이가 나와 동갑이라니, 개봉한지 25년이 지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보았다.

 

아무 사전정보 없이 본 작품인데, 사실 한국판 포스터를 보고 '프리윌리'랑 비슷한 내용인가? 짐작하기도 했더랬다 (ㅋㅋㅋㅋ 휴) 보자마자 든 생각은 '아 DVD를 사야겠다' 라는 것. 그만큼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최고의 잠수 기록을 위해 경쟁하는 자크와 엔조, 그리고 자크의 연인 조안나의 이야기를 바다를 배경으로 끝없는 내적 심연, 무언가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

 

무엇인가에 '푹 빠지다' 라는 표현의 원형은 바다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까. 바다는 세 주인공 모두의 상황을 완벽히 대변하는 배경 설정이 아닌가 싶다. 엔조와 자크가 잠수할때마다 스크린에 가득 채워지는 푸른색 혹은 검은색과 적절히 덧입혀진 음향은 그 어떤 3D, 4D 영화보다 더 생생한 부피감과 공간감이 느껴진다. 관객들은 이러한 영화적 체험으로 무언가에 '푹 빠져'있는 그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자크는 항상 무언가에 홀려있다. 바다에게 그리고 조안나에게. 둘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둘 중 어딘가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은 극을 클라이막스로 끌고 나가는 힘이 된다.

 

조안나가 현실이라면 바다는 비현실이다. 아버지와 인어들이 있는 바다는 자크에게 끝없이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노스텔지어다. 조안나를 만나기 전까지의 자크는 돌고래들과 함께 지내며 비현실 속에 살았을 것이다. 너무나 고독하게, 자신의 심연을 헤엄치면서. 그러나 조안나를 만나 사랑에 빠져 그는 말하자면 현실로 나오게 되었다. 자크와 반대로, 바다를 현실로 대하던 친구 엔조가 바다로 돌아가면서 자크는 꿈에서 바다의 환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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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 할 것이 있는 바다, 그리고 뭍에 서 있는, 자크의 아이를 가진 조안나. 자크는 '두 여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어에서 바다는 'la mer', 여성명사이다.) 내려가서 볼 것이 있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이야기하는 자크에게 조안나는 내가 여기 있다고, 내가 여기 '존재'한다고 울부짖는다. 자크는 이 순간, 가고싶은 비현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이 씬을 꼽겠다. 다리는 바다 속에 담그고 오른손은 조안나의 손을 붙들고 있는 자크. 뤽 베송 감독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ㅡ현실과 비현실ㅡ중 어느 쪽 줄을 끊어버릴 것인가 갈등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일렁이는 검은 바다 위에서 부감으로 고스란히 보여 준다.

 

자크는 그녀의 손에 잠수 크레인 줄을 쥐여 주고, 결국 그녀는 줄을 당긴다. 바다 속으로 끝없이 미끄러져 내려간 자크는 심연에 다다라 잠수 크레인에서 손을 떼고 돌고래를 따라 빛도 없는 그 곳으로 사라진다.

 

STILLCUT

 

 

"잠수할 때 어떤 기분이야?"

"추락하지 않고 끝없이 미끄러지는 기분이야. 바다의 밑 바닥에 있을 때가 가장 힘들어"

"왜?"

"올라와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그 이유를 찾는게 항상 너무 힘들어."

 

 

끝까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결국 '비현실'을 택한 자크. 그것이 그가 '사는' 길이었을 터. 현실에 발 붙이고도 끝없이 비현실을 갈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뤽 베송 감독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뤽 베송 감독도 자크처럼 끝없는 자신의 세계, 심연에서 행복한걸까. 장 마크 바의 몽환적 표정 만큼이나 낭만적인 결말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장르를 멜로로 본다면 새드엔딩이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해피엔딩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을 떠나보낸 조안나는 그의 아이와 함께, 그리고 마크는 인어들과 영원히 행복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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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와 영상이 이토록 잘 어우러진 영화는 참 오랜만이었다. 최첨단 기술 없이도 스크린과 음향 딱 두가지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매체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3시간 동안 그랑 블루에 푹 빠져 나도 흠뻑 물들어 버린 듯, 기분 좋은 무거움을 지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꿈은 바다 꿈을 꾸어야지. 자크처럼 끝없는 심해를 헤엄치는 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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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3. 7. 6. 15:20 Re-View/연극/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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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연출 및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어쌔신>. 계속 리뷰 쓰기를 미루다가 쓰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있는 여운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 좋은 작품은 관람한 후에도 여운이 계속 진하게 남아 있어, 그것을 털어버리지 않으면 도리어 답답하다.) 이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건 13년 1월 30일. 막공이 임박하여 관람하고 온 날이었다. 이어서 써 보아야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지적인 뮤지컬'로 평가받았다는 뮤지컬 <어쌔신>은 미국 대통령들의 암살자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암살당해 죽은 미국 대통령들의 비극적인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다. 때론 미화시키고, 때론 그것으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암살'당해 죽었다는 것 만으로도 무언가 신비스러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보인달까.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은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 어쌔신은 대통령 암살을 소재로 하지만 암살당해 죽은 대통령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을 암살한 암살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실존 인물들이고 극에서 묘사되는 그들의 삶 또한 일정부분 사실이다. 주류를 죽여 없애버려도 여전히 주류로 편입되지 못하는 그들, 대통령을 암살하고 난 자리에는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라는 뉴스 신문 타이틀만 존재 할 뿐, 그들은 부각되지 않는다.

 

 

# 대통령을 쏘아 맞추시면 상품을 드립니다!

 

사실 링컨, 케네디, 닉슨과 같이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대통령들 말고도 잘 모르는 대통령들 또한 많이 언급되는 까닭에 극이 시작되고 나서 초반엔 조금 어리둥절 했었더랬다. 잘 모르는 미국 대통령에다 그들을 죽인 암살자들의 이야기라니. 그러나 극이 끝나고 생각해 보니 이것은 암살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냥 별난 사람들의 얘기였다.

 

어쌔신의 오프닝은 각 암살자들에게 총을 쏘라고 권유하며 맞추면 상품을 준다는 사격장 주인의 (약을 파는듯한) 삐걱거리는 이상한 넘버로 시작한다. 링컨을 암살했던 존 윌크스 부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시대적 배경이 많게는 100년까지 차이나는 암살자들은 모두 한데 모여 자신이 어떤 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죽였고, 또 죽일 예정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든다.

 

 

# 그들은 왜 '대통령'을 쏘았나?

 

대통령을 저격한 그들은 각기 이유도 다르다. '남이 잘되는게 배가 아파서', '좋아하는 배우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대통령을 죽이면 내 애인과 함께 TV에 나갈 수 있으니까', '내 삶의 방향성을 알기 위해서', '공연평이 나빠서', '대통령이 날 무시해서' 등. 어쨋든 대통령을 죽이려고 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저격당했을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들: 역사적으로 무엇을 잘못해서 응징할거라는, 응징하여 시대적 과업을 달성하려는 목적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가장 처음 제시되는 실패한 배우 부스의 사연에서 대통령 암살 이유가 명목상 '남북전쟁을 일으킨 독재자이기 때문에'가 그나마 납득이 간달까.

 

그들의 '아주 개인적인 속사정'을 쭉 듣고 있자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원했던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미친놈들의 얘기처럼 삐걱거리고 비틀거리고 이상한 사람들의 얘기처럼 비춰지지만 그들은 관심이 필요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유년기를 지냈고, 권리를 주창하면 잡혀가는 노동자였고, 누군가에게 무시를 받았고, 한때는 잘나갔지만 몰락한 사람이었다.

 

우리모두 개인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곧 우리 모두의, 공적인 얘기다. 아주 개인적이지만 사실은 공적인 이야기. 이것을 환원시키기 위한 장치 '대통령 암살자'들의 이야기는 아주 탁월한 소재가 아닌가!

 

 

# 자유의 나라, 아메리카!

 

우리 모두 자유를 원한다고 외치지만 그 자유로 인해 대통령이 죽었고, 죽은 대통령의 가족들은 깊은 슬픔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인가? 그들이 극대화된 자유를 가지고 사람을 죽였지만 결국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하였다. 자유가 수단이 되었을 때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이라고나 할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을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구현하는 어쌔신들을 보여줌으로서 손드하임은 어느 권력에도 편승하지 않는 중립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자칫하면 주류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을수도 있지만 극중 해설자인 발라디어가 시종일관 그들을 조롱함으로서 어느 편을 드는 것을 막는다. 그렇다고 멍청하고 현실감각 없는 암살자들을 조롱하는 극이냐? 그렇지도 않다. 그렇게 그들을 조롱하던 발라디어 역시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을 쏘아 죽인 암살자 중 한명이 됨으로서 그 해석도 뒤집힌다.

 

이기는 편 우리편! 이라고 외치는 듯한, 무대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데리고 조롱하는듯한 이 불편한 극을 관람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짓지 못한다. 개운치 않고 뭔가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뒷맛. 그러나 그것이 절대로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 대체 불가능한, 삐걱거리며 나아가는 손드하임의 넘버

 

뮤지컬은 작품을 처음 볼 때, 특히 송스루 뮤지컬일 때 대사가 모두 넘버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멜로디를 따라가느라 그 내용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인물 별 테마가 반복되고 멜로디가 귀에 익으면 그제서야 편안히 가사가 들어온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듣기 좋은 음계(?)를 쓰는 뮤지컬 넘버들도 그런데, 어쌔신의 넘버들은 매우 난해하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멜로디가 마치 현대음악을 듣는듯하다. 극이 진행되어도 같은 테마는 반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가사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는수밖에 없다.

 

기를 쓰고 가사를 듣는 불편함과 결합된 삐걱거리는 멜로디는 마치 무대장치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다. 심플하고 거친 어쌔신의 무대장치는 극의 에피소드들을 연결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넘버 또한 그 거칠고 심플한 무대의 일부처럼, 넘버가 그 자체로 연출의 일부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넘버로 연출을 하는 손드하임의 명성은 이미 익히 들어왔지만 그의 작품을 직접 본것이 처음인 손드하임 작품의 첫경험의 강렬한 충격은 개인적으로 어마어마 했다. 이런 극은 손드하임의 넘버 말고는 대체 불가능하다. 엉망진창이고 삐걱거리지만 상당히 깔끔하게 떨어지고 세련된 느낌.

 

 

# 그리고 사족.

 

뮤지컬 '어쌔신'의 국내 초연도 본 지인에 의하면 이번 시즌 어쌔신이 굉장히 친절해졌다고 평했다. 아마도 황정민 연출이 좀더 대중적인 입맛으로 바꾼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다. 지금도 충분히 손드하임의 극의 맛을 즐길 수 있었지만 조금 더 날것의 부분을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연출이 모두 해석해버려서 관객 재량으로 해석할 부분이 없어졌달까. 그런 아쉬움이 있다.

 

연출 겸 찰리 귀토 역을 맡은 황정민 배우는 무대 위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스크린에서 줄곧 날것의 연기를 보여주는 그가 무대 위에서 정제된 우스꽝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조금은 생경했지만 그가 의도한 연출과는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배우 황정민을 무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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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3. 4. 10. 01:42 Re-View/연극/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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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할 수 있다. 뮤지컬 레베카는 단연 2013년 상반기 대표 라이센스 대극장 뮤지컬이라 할 만 하다. 이미 서울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지방 투어를 돌고 있지만 주연 배우들이 말했던 것 처럼 불황인데도, 비수기인데도 깜짝 놀랄만큼 흥행에 성공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대극장 뮤지컬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려면, 무대든 넘버든 뭔가 웅장해야 하고 뭔가 고급스러워야 하고 뭔가 대중적인 배우들이 나와야 흥행에 성공한다는 공식(?)이 있다. 대중적으로는 이 삼박자가 먹힐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에 의해 관람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베카'의 흥행은 이 세 가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전 캐스팅을 모두 관람 하며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이유를 딱 세 가지만 꼽으라 한다면,

1. 기량있는 배우들의 호연, 특히 뮤지컬 배우로서의 옥주현의 재발견

2. 실베스터 르베이 특유의 웅장하고 중독성 있는 넘버

3. 극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환상적인 무대, 영상의 사용

이 세 가지를 꼽겠다. 이 이유들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 뮤지컬 배우, 옥주현

레베카에 출연한 배우들은 유준상, 류정한, 오만석, 임혜영, 김보경, 신영숙, 옥주현 으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배우들이다. 유준상, 오만석 배우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배우들이고 류정한, 신영숙 배우는 뮤지컬계에서 내노라 하는 배우들. 김보경 배우도 뮤지컬 '미스 사이공' 주인공 '킴' 역할을 맡아 실력을 검증받은 바 있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배우는 댄버스 역을 맡은 옥주현 배우였다. 댄버스 역은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분류 되어 있는데, 극 중의 존재감으로 따지자면 사실 주연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역이다. 공연이 끝나고 머릿속에 가장 맴도는 "뤠붸~카~~" 넘버 또한 댄버스가 부르는 넘버일 만큼 그리고 극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옥주현 배우는 놀랄만큼 이 굵고 짧은 댄버스 역할을 잘 소화 해 냈다. 이전까지의 옥주현 배우와는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만큼 발전되고 안정된 실력이 피부로 와 닿았다.

 

사실 뮤지컬 '아이다'에서 옥주현 아이다로 관람을 하고 매우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노래는 그때도 엄청나게 잘 불렀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넘버는 기깔나게 소화하는데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작위적인 대사톤은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인 '척' 하는 옥주현으로 보이게 해 극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감동도 없었던 것 같다. 유일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암네리스 역의 정선아 배우에게 반하고 왔다는 것? 그리고 나서 무조건 기피하는 배우로 찍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연히 생일선물로 공연을 보여준다는 친구를 따라 '엘리자벳'을 보러 갔었는데, 엘리자벳으로 분한 옥주현 배우를 보며 너무 잘해서 감탄했더랬다. 감정을 싣는 농도가 훨씬 깊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감탄하면서도, 이 배우가 발전을 한건지 그냥 자기와 맞는 역할을 만난건지 반신반의 했었다. 그런데 댄버스로 분한 그녀를 보고는 확신했다. 확실히 더욱 깊어진 감정선과 캐릭터 분석을 원래 잘했던 노래에 실으면서 우리나라 뮤지컬 탑 여배우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그녀 밖에도 임혜영 배우 또한 이 극에서 재발견한 배우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에서 최현주 배우와 더블이었는데 임혜영 배우로 못 본 것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잘 해주어 팬이 된 배우이기도 하다.

 

 

# 중독성 있는 넘버

뮤지컬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넘버는 항상 웅장하고 중독성 있다. 뮤지컬 '레베카'와 그 원작인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는 표방하고 있는 장르인 스릴러물 치고는 반전이 약한 편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도 하고. 그러나 포인트는 그 '반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영화를 먼저 봤던지라, 히치콕 감독 특유의 스산한 연출과 긴장되는 분위기를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는데 원작 만큼이나 잘 살렸다는 평을 내리고 싶다. 반전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영화가 처음 선보인 1940년대에는 엄청난 반전이었을 것이지만) 살려야 하는 극의 포인트는 스산하고 음산한, 미스테리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뮤지컬 '레베카'의 넘버는 그 '분위기'를 100% 살려낸 느낌이다. 앙상블들의 합창도 매우 웅장하여 음향 빵빵한 대극장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클라이막스가 지나고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넘버 '어젯밤 꿈속 맨덜리' 는 관객으로 하여금 기립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관객들의 열화적 성원에 힘입어 한국판 실황 OST를, 캐스팅별로, 무려 3cd로 낸 것은 아름다운 넘버의 위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특히 긴장감이 최고조 되는 부분에서 막심이 부르는 넘버 '칼날같은 그 미소'는 배우에 따라 가사가 조금씩 달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 명불허전,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

넘버와 더불어 극의 분위기를 조성하는것은 무대이다. 뭐 당연한 얘기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라는 것이다! 앞서 포스팅한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무대 또한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로 상징적이고도 아기자기한 무대로 극의 분위기를 더한다. 뮤지컬 '레베카'는 대극장 뮤지컬이라 소극장이었던 스옵마의 느낌과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장면이 바뀔때마다 액자처럼 보이는 무대 밖을 두르고 있는 상징적 아이콘들에 조명이 들어와 어떤 상황인지 직관적으로 짐작케 하는 장치가 극의 즐거움을 더한다. 맨덜리 저택이 불타고 난 후 무대 위 가운데에 있는 레베카의 표식 R이 빨간색으로 변하며 연기가 나는 장면은 뒷열에 앉았을 때 볼 수 있는 묘미이기도 하다. 또한 무대의 뒷 배경에 하늘, 파도 등 사실적이고 적절한 영상을 써서 웅장함과 긴장감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는 모두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 이번 작품에서의 무대는 영화에 비해 축소된 내러티브와 약한 반전으로 자칫 휑해 보일 수 있는 대극장 뮤지컬의 무대 여백이 하나하나의 작은 의미들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쭉,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라는 이유로 작품을 선택해서 볼 요량이다. ^_^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 등 유럽풍 시대극을 주로 올리는 EMK 뮤지컬 컴퍼니의 작품들 중 종합적으로 가장 맘에 든 작품 '레베카'. 2014년 블루스퀘어에서 재 공연 된다는 소식이 유난히 반갑다. 이번 시즌 서울 공연은 끝났지만 지방 투어를 돌고 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놓치면 후회하실테니, 꼭 맨덜리 저택을 방문하시길 권한다. 비공식적 '연뮤의 법칙'에 따르면 초연이 진리고, 지나간 캐스팅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공연 사진 출처: 플레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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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3. 1. 27. 16:52 Re-View/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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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를 쓸까 말까 하고 한 100번은 망설였던 것 같다. 처음 영화관에서 보고 받은 감동과 충격은, 다이어리에 쓰는 한줄 감상평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도대체 이건 뭐지? 3D 영화가 이렇게 따뜻하게 황홀할 수 있다니!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영화 하나 안에 다 담아내다니!

 

그날 밤,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못이루다가 이튿날 아침 다시 한번 영화관을 찾았더랬다. 한번 더 보아도 여전히 황홀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창을 켜게 된 것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 대한 생각을 부족하게나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그러면 미어캣 산호섬처럼 영원히 영화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할것 같아서.

 

 

 

   제목은 말 그대로 '파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사실 파이 파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 소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다. 파이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 안에 각자 다른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거대한 틀은 모두 똑같다. 누구나 신념(혹은 어떤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타인과 소통하는 사회적 동물이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주체이다. 이 인간에 대한 공통적이고도 삶에 대한 근원적 명제들은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각각의 화두가 된다.

 

 

# 신, 종교 그리고 인간

 

   우연히 불특정 다수가 쓴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감상평을 보게 되면 종교적 색채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영화보기 힘들수도 있다는 말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종교적 색채를 띤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이는 여러가지 종교를 믿지만, 리처드 파커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파이의 믿음, 폭풍우 치는 배 속에서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울부짖는 어떤 대상이 특정 신이나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어떤 것에 대한 믿음자체가 '종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믿음일 지라도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말이다.

 

가령, '성실하게 살아야 복이 온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매사에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의 종교이다. 작게는 '한 해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봄에 꼭 벚꽃놀이를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벚꽃놀이를 하여 한 해를 행복하게 보낸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종교인 것이다. '종교'란 것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마음 속에 믿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이 삶에 반영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게 바로 종교인 것이다. 꼭 신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신념들이 곧 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흔히 통용되는 의미의 '종교적' 영화가 아니다. 세가지 종교를 믿는 파이는 힌두교의 신에게 예수님을 소개시켜줘서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마음의 안정과 소속감을 얻는 것이 좋아 알라신을 경배한다. 파이를 어떤 종교에 온전히 소속되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파이가 믿는 '여러가지' 그 자체가 파이의 종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종교는 후에 이 작품의 가장 커다란 화두인 '믿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 리처드 파커 : 인사할 새 없이 사라지는, 내 삶을 걸었던 존재들에 대한 은유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멕시코 해변의 숲 속으로 사라지면서 파이의 기대와 달리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하면서 함께 지내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말이다. 그런 리처드 파커가 야속해 파이는 엉엉 울어버린다. "호랑이는 호랑이일 뿐, 너의 친구가 아니다. 호랑이의 눈 속에서 뭔가를 봤다면 그건 그의 영혼이 아니라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일 뿐이다."라고 이야기 했던 파이의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그는 단지 호랑이일 뿐이었다. 친구라는 관계는 파이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관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파이는 분명 리처드 파커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 말고 분명히 리처드 파커의 영혼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가 어떤 것을 보았든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돌보며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의 온 삶을 걸고 리처드 파커를 돌보았던 것이다. 후에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회상하면서 인사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며 눈물을 흘린다. 삶 전체였던 리처드 파커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파이는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고마워. 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어. 힘들었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더라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더라면.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후회를 했던 많은 기억이 떠올라 파이와 함께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기대고, 지키고, 완성하려 노력했던 지나간 사람들, 과제들, 공간들, 물건들. 정말 이상하게도 그들은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갑작스레 사라진다. 리차드 파커는 그런 존재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는지. 사라진 그 존재들이 나에게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사라지면, 미처 전하지 못한 나의 진심만이 찌꺼기로 남을 뿐이다.

 

 

#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습니까?

 

   파이가 구출된 후 일본 선박 회사 사람들에게 해 준 현실적인 이야기와 영국 작가에게 파이가 해 준 환상적인 이야기 중, 관객이 무엇을 진실로 믿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반전영화가 될 수도, 아닐수도 있다. 또 해피엔딩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진실로 설정했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이안 감독 또한 '노 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 만큼 이 영화의 이야기는 관객, 즉 온전히 수용자의 몫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말이다.

 

무엇이 진짜 일어난 '사실'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는가'이다. 내가 믿는 것들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것은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것이고 앞으로 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방향을 잡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반드시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동물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니체의 말에 동감한다면, 무엇을 믿느냐는 그 사람을 규정하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로 이어지는 이안 감독의 놀라운 필모그래피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추가함으로써 도저히 한 사람의 필모그라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욱 다채롭게 되었다. 깊은 철학이 돋보이는 이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이 작품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된다. 최신 기술인 3D로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인 장면을 구현하여 그의 철학과 거기서 오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그의 연출력은 말할것도 없겠다.

 

 

  그동안 고르기 주저하고 있었던 '내 생애 최고의 영화'에 마침내 이 영화를 올리게 되었다. 우연한 사건을 가장한 은유로 점철된 삶, 그것을 해석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메시지는 평생 내가 마음속에 두어야 할 명제인것 같다. 이 영화가 반전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2013년을 여는 첫 영화로 완벽한 선택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원작 『파이 이야기』도 읽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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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3. 1. 26. 15:50 Re-View/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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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저자
전혜린 지음
출판사
민서출판사 | 2004-06-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독일 유학이후 대학교수로 생활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저자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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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따르는 교수님이 계시다. 그분을 처음 뵈었던 학기의 첫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의 서브젝티비티subjectivity 그리고 존재감presence를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학기 내내 반복되면서 내 안에서 하나의 알맹이로 굳어졌다. 살면서 몇 번쯤 찾아오는, 번쩍 하는 깨달음의 순간들, 즉 어웨이크닝 모먼트awakening moment들의 소중함, 그리고 낭만적, 이상적 이야기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온 마음으로 이야기 해 주신 교수님. 그분의 강의를 들을 때 마다 속으로 혼자 생각하거나 일기장에 끄적거린 나만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이미 '문화 이론'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희열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온 것들이 적어도 틀리지 않았다는,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릴뻔 한 적도 있었다.

 

주체성과 시/공간적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듯'한 무수한 사람들 속에 정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주체적으로 생을 이끌어 가는 '진짜'들이 몇이나 있을까. 찰나의 순간 속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의 나열이 내 삶이라면, 매 순간 내가 정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정말 '살아'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신 교수님이 추천한 여류작가가 바로 전혜린이다. 수업시간에 여러 책들을 소개해 주셔서 다 읽으려고 무던히 노력중이지만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접하게 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책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이 책을 한줄로 요약정리 한다면, 위에 교수님께서 가르쳐 주셔서 나에게 알맹이가 된 것들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겠다. 전혜린은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던것 같다. 그리고 그 느낌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도 매우 탁월하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내가 전혜린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작가의 손을 떠난 글은 이미 독자의 것이라는 "작가의 죽음"이라는 말은 여기서만큼은 예외라고 생각될 만큼 상황과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느낌이 와 닿는다. 그녀와 내가 같은 모국어를 쓴다는 것이 감사할 정도. 적어도 번역으로 인한 느낌의 반감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녀가 내면에 가지고 있던 어둠, 빛, 환희, 슬픔, 무력감 이런 것들이 바로 날아와 마음에 스민다.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닌데 그 감정이 너무 생생히 느껴져서 지하철안에서 읽다가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의 느낌과 생각들, 그리고 그녀가 아이를 낳고 생각한 것들이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았다. 낯선 곳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불안함과 설렘, 예기치 못한 사람, 사물, 장소와의 만남은 글로만 읽어도 참 좋다. 내가 이방인에서 서서히 낯선 곳의 삶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여행에서도 즐기려 노력하는 나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또한 부모와 자식에 대한 그녀의 생각도 읽는 내내 휙휙 날아와 꽃힌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이 많은 요즘이어서 그런가, 내가 나중에 딸아이를 낳아도 꼭 이런 느낌일 것이라 생각된다.

 

 

 

정제된 듯 보이지만 날것의 느낌을 가진 문체로 삶에 대한 사유를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이 책은 한 문장, 한 단어 놓칠세라 모두 씹어 삼키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읽었을 때 그녀가 남긴 이 느낌들은 분명히 나의 삶의 맥락에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임을 확신하기에 방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꽃아 두었다.

 

정말 '살아있음'을 만끽한 그녀가, 그토록 예뻐하고 자신보다 아끼는 아이까지 있는 그녀가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래. 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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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2. 7. 17. 21:17 Re-View/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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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저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출판사
지만지 | 2010-09-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인간의 본바탕은 선하다는 체르니셉스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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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제목만 들어도 어두침침한 이 책은 실제로 어두침침하다. '비정상적'이고 '찌질'한 '지하인'이 자신의 수기 (혹은 일기)를 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지하인은 가난한 귀족이다. 그는 돈이 없으면서도 귀족의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음흉하고 늙은 하인을 굳이 집에 두고 있다. 이런 그의 숨길 수 없는 찌질본능으로 말미암아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자신이 따돌림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하인은 뻔뻔하게 친구들의 모임, 귀족들의 모임 자리에 나간다. 자신을 대놓고 경멸하는 한 친구를 죽여버리겠다고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막상 그 친구에게 따지러 가는 길에 자신이 그보다 못하다는 온갖 상상을 다 하여 이른바 '열폭' 끝에 결국은 복수도 하지 못하는, 그런 소심함의 결정체다.

 

이런 전반적인 캐릭터 설명만 들어도 그의 찌질함이 와 닿지 않는가. 이 찌질한 지하인의 수기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쉽게 말하면 1부는 이론편, 2부는 응용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1부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자신의 처지에 대한 통렬한 지각과 함께 자신이 '찌질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고통을 느끼는 사유를 기술해 놓았다. 그러나 자신이 찌질하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로 기뻐한다. "나는 찌질하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다니며 실실 웃는 사람이랄까. 이런 행태만 보더라도 지하인은 비정상적이고 미친사람으로 분류될 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비정상인'으로 그려지는 지하인에 대하여 엄청난 공감을 하게 된다. 속으로는 모두 속물적인 생각과 가치를 추구하면서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현대인들에게 가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일침이랄까. 너희들은 다 미쳤어. 이렇게 통렬히 까발려주니 어때? 하고 비웃는 듯 하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몇번 헛웃음이 나오거나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띠며 읽게 된다. 가끔은 '이걸 꼭 글로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평소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흘려보냈던 잠재적인 찌질한 생각들을, 지하인은 모두 수기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하인의 수기를 읽다가 나오는 헛웃음과 조소는 책을 읽고있는 나 자신에 대한 헛웃음이고 조소임을 알게 된다.

 

 

2부로 들어가면, 지하인이 겪은 하루동안의 일을 쓰면서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고 그것을 좋게 포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들여 어떻게 말로 내뱉었는지를 1부에서 썼던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생활에 적용되는지 쓰고 있다.

 

2부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뼛속까지 꼬여있는 (어떻게 보면 오히려 완전무결하게 순수하다고도 볼 수 있는) 지하인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지하인은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할 해프닝으로 여기고 있는 듯 한데, 그를 바라보는 하인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자신의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는 듯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고 주인을 약 3분간 째려보는 하인의 태도를 파악하고 지하인은 일부러 말을 돌려버리고 더 위엄있는 척 하여 그 순간을 모면한다. 이렇게 미묘한 찰나의 순간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인을 통해 놓치지 않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지하'가 나타내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시공간과 같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시하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지하'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지하는 여기서 곧 정해진 이념, 규칙, 정정화된 개념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모색의 여지를 지칭하기 위한 기호가 된다. 

 

이러한 조건의 시공간에서는 우리의 개성을 찾아가는 시도는 곧 일탈을 의미한다. 지하인은 실제로 아프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지하인은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보인다. 닫힌 세계 속에서 자신의 개성을 인식하는 것 만큼 남들이 보기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책에서 종종 보이는 지하인의 모습 - '귀족'이라는 체면을 위하여 겉치레를 하는 등의 모습들 - 은 또한 '변덕'을 통하여 그것을 탈피하고 있다. 사랑에 대하여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었던 지하인이 어떤 여인을 만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우친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변덕'의 미덕을 알 수 있다. 면덕은 단지 나쁜것이 아니라 체면이나 타자의 시선 때문에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하지 못하는 것을 탈피하는 행위임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짧지만 지금까지 살았던 나의 인생 지론인 '찰나의 순간에 우주가 담겨있다'는 나의 말을, 지하인은 진심으로 공감해 줄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찌질해 지는 건 찰나의 미묘한 순간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내가 원하는 바를 쭈뼛쭈뼛 실행하지 못할 때. 이를 놓치지 않고 신랄하게 까발렸다는 점, 또한 그를 통해 우리가 찌질한 모습을 깨우치는 것이 최대의 복이라는 점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도 지하인에게 하등의 공감도 못한다면 당신은 둘중의 하나일 것이다. 완전체이거나, 스스로에게까지 가식을 떨고 있거나. 지하인은 이렇게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찌질하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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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2. 6. 13. 12:42 Re-View/연극/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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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수 '키사라기 미키'가 자살한지 1년 후, 그녀를 각각 가슴에 품고 살아온 팬들이 그녀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하여 모인다. 인터넷 팬카페에서만 활동을 했던 그들의 닉네임은 각각 이에모토, 스네이크, 야스오, 딸기소녀, 기무라 타쿠야. 그녀를 추모하기 위하여 모인 이 네명의 팬들은 그녀를 추억하던 중, 미키짱의 죽음에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TV속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이돌이든, 탤런트이든 상관 없다.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관객과 공통적인 공감대를 깔고 그 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가수 미키짱을 사랑하는 다 큰 남자 '덕후'들의 이야기는 보기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점점 그 본질에 접근시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데, 그 과정이 눈물이 날 만큼이나 재미있다. '코믹 미스터리극'이라는 타이틀에 딱 맞는 연극이다.

 

 

능청스런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대박. 특히 스네이크역의 정상훈배우. (정말 웃다가 죽는줄 알았다.) 뮤지컬 '스팸어랏'에서부터 알아봤지만 정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극을 살려내는데, 혀가 내둘러질 정도. 앞으로 정상훈배우가 하는 코믹극은 그냥 믿고 보러가는걸로! ^,^  

 

 

키사라기 미키짱은 그냥 웃고 끝나는 코믹극이 아니다. 내 주변을, 내 삶을 한번쯤 돌아보게 한달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이미지'와 '환상'에 불과하다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것은 불투명한 미래와 진실을 알 수 없는 세상에 의미부여를 하고 살아가기에 가치있는것 아닐까. 현실은 '가치중립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어붙인 이불같은것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기엔 참 열정적이지 않은가.그리고 우리 주위의 '무언가'에 대해 열정적인 사람들로 인해, 또 그런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것 아닐까.

 

 

신나게 웃다가 즐기다가 보면, 세상에, 이런 깨달음까지 도달하게 된다. 좋은 극본의 힘이라는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 공연이었다. 무겁지 않으나 진중한 코미디. "코믹극의 품격"은 이런 것이랄까? :-)

 

 

그 여정이 궁금하시다면..

 

"♪오!빠! 함께 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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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2. 6. 1. 22:28 Re-View/연극/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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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뉴욕에 갔을 때, 뉴욕에 사는 친구가 이건 꼭 봐야한다며 브로드웨이로 나를 끌고 가서 보여준 뮤지컬이 바로 위키드였다. 그때 받았던 "컬쳐쑈크!!"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화려한 무대와 완전 재미있는 스토리라인, 사랑스러운 등장인물들, 아름다운 넘버, 배우들의 소름끼치는 가창력 그리고 이 세상의 선과 악에 대하여 곰곰히 곱씹게 하는 여운까지. 

 

(지금도 아마 그럴것 같지만) 당시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이었는데, 위키드 오리지널팀이 내한했기에, 한번 더 다녀왔다. 무대가 약간 축소 되었다는 느낌 빼고는 브로드웨이에서 본 느낌 그대로! 이런 뮤지컬은 널리 알려 이롭게 하라!

 

 

 

"So much happened before Dorothy dropped in."

 

위키드를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오즈의 마법사>의 비하인드 스토리! 라고 할 수 있겠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이 도로시와 겁쟁이 사자,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그리고 강아지 토토라면, 위키드의 주인공은 서쪽의 사악한 마녀와 착한 마녀다. 도로시가 오즈의 나라에 오기 전에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 사이에 있었던 '많은 일들'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서쪽의 사악한 마녀의 본명은 엘파바. 그리고 착한 마녀의 이름은 글린다. 도로시가 서쪽 마녀에게 물을 부어 그녀를 무찌른 다음, 기뻐하는 오즈의 시민들에게 글린다가 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극은 시작한다.

 

엘파바가 어떻게 서쪽의 사악한 마녀가 되었고 글린다는 착한 마녀가 되었는지, 도로시의 집이 회오리바람에 실려 오즈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겁쟁이 사자와 양철 나무꾼 그리고 허수아비의 사연들이 한데 얽혀 어우러진다. 그 가운데 오즈의 마법사의 비밀도 밝혀지게 되는데…

 

 

# 진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뮤지컬

 

 

뮤지컬 '위키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디즈니 애니매이션과 흡사하다. 전체적으로 들어가 있는 유머코드와 동화같고 교훈적인 내용 그리고 화려한 볼거리까지. 그러나 절/대/로/ 유치하지 않다. 마치 <라이온 킹>, <이집트의 왕자>가 유치하지 않듯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이 세상의 선과 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르다는 것과 소외받는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위선'과 '위악'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뮤지컬 위키드.

 

 

# 뮤지컬 '위키드' 제대로 보기

 

위키드를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오즈의 마법사>의 내용 복습은 필수!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좋을 것 같다.

 

어느 뮤지컬이나 OST를 익혀두고 가면 더 감동적으로 즐길 수 있다. 다음은 위키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Defying Gravity' 영상. 실제로 보면 더 소름돋는다.. 아 ㅠㅠ

 

 

 

 

위키드는 "21세기를 대표하는 명작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이 전혀 오버스럽지 않다. 보기드문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넘버까지.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섣불리 뮤지컬을 추천해주기 꺼려지는데, 위키드는 자신있게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많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라이센스가 얼른 들어와서 우리나라 배우들이 우리말로 공연하는거 하루 빨리 보고싶은 바람..ㅠㅠ)

 

 

한동안 초록색을 매우 사랑할 것 같다. :D

 

 

***Tips!

오리지널 내한이기에 영어로 공연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대 양 사이드와 오케스트라 피트 벽에 설치된 모니터로 한글 자막이 나온다! 사실 영어적 웃음 코드를 어떻게 번안할까 상당히 궁금했는데 적절히 잘 번안된것 같다. 아주그냥 빵빵 터진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적으로 무대를 조망하고 자막까지 한번에 보고 싶다면 1층 10열 뒤로 갈것! 무대와 조명이 아주 화려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2층과 3층도 무난하게 보일 것 같다.

 

 

 

공연사진 출처: 뮤지컬 위키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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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2012. 5. 5. 05:09 Re-View/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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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좋았다. 참 좋았다.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이 간질간질 하는 영화. 그동안 난 이 간지러움을 못 참겠어서 이런 류의 일본영화를 기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았고 와 닿지도 않았고.. 잔잔한 일본영화에 대한 선입견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보러간 작품. 그래서 감동이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뭐 하나 놓칠세라 전투적인 태세 준비를 하고 봐야하는 작품이 아니다. 영화 속의 시간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에게 흐르듯 자연스럽게 묻어가면 된다. 바람에 실려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처럼.

각자 나름대로의 큰 사연을 안고 기적을 바라는 아이들이 떠난 여행. 그리고 화산폭발.

그들이 바라는 기적은, 아이들 자신에게 있다기 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있다. 아빠가 파칭코하러 가지 않게 해주세요, 강아지가 살아나게 해주세요, 아빠의 밴드가 잘 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이 다시 함께 살게 해주세요. 라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기차가 교차한다고 해서 설사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나온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상황을 바꿔놓을 리 만무하지만 아이들은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간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기적을 위한 '의식'을 행했다는 것이다.

그 '의식'을 계기로 실제로 아이들의 많은 부분이 변화한다. 기차가 교차하는것을 보러 떠난 아이들 내부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들에게 기적을 바라게 한 '세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천재는 의식을 행함으로서 만들어 지는것이라고. 마찬가로 기적도 또한 의식을 행함으로서 만들어지나보다. '나보다 세계를 위해서 개인적인 소원은 안 빌었어'라고 동생에게 고백하는 고이치의 모습에서 비로소 성장이라는 기적을 보게 되었다.

기적은 거창한것이 아니다. 내 손 안에 있는 작은 꽃잎, 간식으로 먹는 할아버지가 만드신 바람떡, 친구가 그린 그림. 그 속에서 지속되는 일상 자체가 기적인 것을. 그리고 그 기적들이 모여 화산이 폭발하듯, 펑 하고 성장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의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마치 실제로 그 아이들의 상황에 카메라만 들이민 것 처럼. 보드라운 날 것의 느낌. 들에 핀 보들보들한 야생화의 꽃잎같은 그런 느낌. 영화의 마지막 부분 자연물을 촬영한 컷들의 나열이 위화감 없이 영화에 완벽하게 조화되는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도 '치유계'에 속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일상속의 기적을 느끼고 싶을 때 제격이다. 길가에 핀 이름모를 꽃의 아름다움, 햇살좋은 오후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 파란 하늘에 양털같은 구름을 보며 행복함을 느끼는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우는 느낌.

매일 매일 조금씩 회전하는 지구처럼, 아이들의 키처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은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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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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