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06/08 ~ 2013/09/08 @ 백암아트홀 관람 cast / 조승우, 조진아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아는 그 뮤지컬 <헤드윅>. 내 생애 첫 헤드윅은 2011년 8월 어느메에 봤던 뽀드윅, 조정석의 헤드윅이었다. 너무 뽀얘서 '뽀드윅'이란 애칭이 붙은 그는 나에게 그야말로 새하얀 섬광같은 충격을 주었더랬다. 첫 관극때 내가 느꼈던 키워드는 [절대적 존재 / 삶 / 사랑의 종류] 에 관한 것들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단순한 트렌스젠더라는 호칭이 부족한 그 존재 헤드윅에게 완전히 홀려 두시간 남짓 되는 시간들동안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첫 관극을 시작으로 나도 헤드윅을 열혈 관객이 되었고 그 다음 시즌 오만석의 헤드윅 오드윅, 그리고 이번 시즌 조승우의 헤드윅 조드윅까지 회전문 회전문 그런 회전문이 없도록 팽팽 돌았다.
사실 헤드윅을 보고서 장문의 리뷰글을 남겨본 적이 없다. 쓸 말이 너어어어어어무 많기도 하고, 커다란 주제를 배우와 밴드가 그날그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때로는 메시지, 내용까지도) 굉장히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 매일 달라지는 그 요소들은 오롯이 마음속에 품고 앓는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헤드윅들이 전달해 준 그 감정들이 휘발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리고 이 안타까움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뮤지컬 헤드윅은, 헤드윅을 필두로 한 앵그리인치 밴드가 리버뷰(River View) 모텔의 지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관객들은, 뮤지컬 관람객이 아닌 헤드윅의 공연을 보러 내려 온 리버뷰 모텔의 투숙객으로 설정된다. 실제로 콘서트 혹은 라이브 공연의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의 호응, 반응 정도가 극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어떤 공연들도 그렇지만, 특히 <헤드윅>은 온전히 같은 공연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같은 헤드윅의 공연을 보더라도 항상 다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그 많은 헤드헤즈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헤드윅 그리고 토미
(사실 이 포스팅을 하는 건 조드윅을 만난 충격을 적기 위해서,였는데 얘기가 많이 길어졌다.)
개인적인 <헤드윅>의 관전 포인트는 헤드윅과 그가 키운 락스타 토미 노시스와의 관계이다. 토미가 음악적으로 성장하기까지 서로 정신적으로 교감한 헤드윅은 마침내 토미가 그녀의 반쪽이라고 확신한다. 토미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순간, 성전환 수술의 실패로 어찌보면 반만 여자인 헤드윅의 정체를 알아버리는 토미. 그에 대해 헤드윅이 대처하는 자세, 그리고 리버뷰 모텔 건너편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 동시간에 공연하는 토미가 헤드윅에게 바치는 노래가 들리고 헤드윅이 퇴장하기까지 감정선이 쭉 이어진다.
토미와의 트레일러씬부터 헤드윅이 퇴장하는 맨 마지막까지의 이 부분에서 극의 메시지가 정리된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 헤드윅마다 굉장히 다르다는 것인데, 각 헤드윅의 방식대로 쌓아온 감정선들이 여기서 폭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조드윅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앞서 만났던 두 헤드윅의 노선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
앞서 만났던 뽀드윅, 오드윅에게서는 사랑, '멜로'적 요소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토미에게 날 사랑한다면 내 치부까지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헤드윅에게서 토미는 얼버무리며 도망치듯 사라져버린다. 훗날 자이언트 스타디움에서 헤드윅이 만든 노래 'wicked little town'을 부르는 토미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헤드윅이었다. 당시 헤드윅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던 토미가 이제야 헤드윅을 이해하고 그녀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 그 노래를 듣고 비로소 상처를 극복하게 된 헤드윅, 그 풍파를 견딘 헤드윅이 관객에게 맨 마지막 넘버인 'midnight radio'에서 지지마라 포기마라 외쳐주는 모습은 힐링 그 자체였다. 토미라는 인물은 '상처'의 메타포 일 뿐, 상처입은 한 존재가 오롯이 서는 과정을 그린 성장 뮤지컬 같다고 해야 하나, 나에게 조드윅을 만나기 전 헤드윅은 그랬다. 비로소 바로 선 그녀는 행복했습니다 해피엔딩 이렇게.
그러나 조드윅은 위 두 헤드윅과는 전혀 노선이 달랐다. 너무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반쪽이라고 생각한 토미에게 차마 자신의 치부까지 사랑해달라고 하지 못한다는 헤드윅. 자신의 치부를 '일부러' 토미에게 보여주고는 역겹지 않느냐고 솔직히 말해달라는 헤드윅. 그런 헤드윅에게 토미는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토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제 됐다고 가라고 떠나보내는 헤드윅. 그게 조드윅의 노선이었다. 세상의 풍파가 둘을 갈라 놓아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진정한 하나됨, 믿음, 즉 완전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지.
.....
운명이란 없는거야
사실은 바람만 있는 하늘처럼
오묘한 마법도 없고 영원한 사랑도 없어
보이지 않는 걸 찾을 순 없어
이제는 받아들여 봐요 당신 존재의 이유를
두려워말고 건너요 wicked little town
('wicked little town' 가사 中)
한시도 헤드윅을 잊지 않았을 것 같은 토미가 'wicked little town'을 부르는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같은 노래인데 어쩜 그렇게 앞서 본 두 헤드윅들과 다르게 들리는지..
#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 조드윅
다른 곳에 있어도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이 곧 완전한 사랑이라는것이 조드윅이 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마지막 넘버 'midnight radio'도 당연히 다른 헤드윅들과 다르게 들린다. 조드윅은 보고 나면 힐링이 되는것이 아니라 되려 마음이 무거워진달까.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걸 아니까. 조드윅에게서는 토미를 향한 강같은 사랑만 느껴지는것이 아니다. 토미 그리고 풍파어린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와 상처도 매우 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반쪽'에 대한 믿음으로 그 상처를 보듬어 안고 나가는 것이 문제의 해법임을 알고 있지. 하지만 쉽지 않아, 사랑이란 건 달콤하기만 한게 아니야. 사랑은 삶 그 자체야.
퇴장했던 이츠학이 자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와 미드나잇 라디오를 이어 부르면, 헤드윅은 손들고 있는 관객들 사이로 비척비척 걸어나간다. 완전한 사랑을 얘기하지만 헤드윅은 여전히 불완전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완전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愛)과 증오(憎) 모두 업고 가야 한다. 마치 정반합의 원리처럼. 토미에게 "I love you, but I hate you.." 라고 되뇌이는 헤드윅이 正이라면 토미는 反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이다. 속박과 자유, 위와 아래, 남자와 여자 같은. (이 부분은 첫 넘버인 'tear me down'에 나오는 가사이기도 하다. 헤드윅이 그 장벽 위에 서있다면서, 그녀는 자신이 처절히 부숴지기를 갈망한것일지도 모르겠다.)
+ 조드윅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조드윅 볼 때 마다 (언젠가 반드시 따로 포스팅 할) '조승우'라는 배우에게 혀를 내둘렀다. 무대에서 아주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딱 맞다. '조승우 콘서트를 온건지 뮤지컬 헤드윅을 보러 온건지 모르겠다'고 하는 후기들이 종종 보이는데, 당연하다. 조승우 헤드윅의 콘서트니까. 그 어떤 헤드윅보다도 조드윅은 극에 객석을 끌어들인다. 관객참여 이벤트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관객도 무대 위 연기자의 일부처럼 취급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이야기로 '객석'과 '무대'를 분리시켜 얘기하자면, 조승우의 <헤드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객석까지 모두 무대에 올라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의미의 '객석'은 무엇이냐? 집에 돌아가며 <헤드윅>을 곱씹는 관객들, 그들이 바로 '객석'이 된다.
조배우가 가진, 특히 뛰어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극의 상황을 이해시키는 몸짓과 그만의 대사처리 (혹은 애드립) 는 <헤드윅>과 완전한 찰떡궁합을 보여준다. 사실 다른 헤드윅을 먼저 만나고 조드윅을 만난게 참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 조드윅을 가장 처음 만났다면, 어떤 의미로 '헤드윅'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생겨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헤드윅을 보는 게 힘들었을지도..
# 당신이 보는 그 순간만 존재하는, 당신만의 헤드윅
이렇게 삶에 대한 철학적이고 거창한 이야기를 관객들을 대면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내는 작품 <헤드윅>은 분명 마스터피스다. 영화나 뮤지컬 <헤드윅>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주옥같은 넘버들 또한 이 작품의 자랑거리. 풍부하디 풍부한 라이브 락앤롤 사운드에, (실제로 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앵그리인치 밴드의 라이브 연주의 황홀함을.) 거의 '원맨쇼 형식'으로 진행되는 헤드윅 역을 맡은 배우의 기량을 흠뻑 느끼기에는 이 작품만한 뮤지컬이 없다고 본다.
관객과 헤드윅, 그리고 앵그리인치 밴드의 미묘한 호흡의 어긋남과 일치를 반복하면서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뮤지컬 <헤드윅>의 포스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본 몇 회차의 공연들 말고도 다른 감정선이 많이 많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맨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같은 회차의 공연을 보아도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천차만별이라 함께 씹고 뜯고 맛보는 재미가 있는 극이랄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보고있는 헤드윅은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보는 그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헤드윅이라니,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가. <헤드윅>을 본 당신이 무엇을 느꼈던 그건 100% 다 옳다. 그건 온전히 당신만의 헤드윅이니까!
다른 헤드윅들이 너무나 궁금하다. 지금까지 세 헤드윅밖에 못 만난게 참 아쉽고 아쉽다. 앞으로도 계속 다른 헤드윅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은 얼마 남지 않은 이번시즌 헤드윅이 너무 아쉽다.. 송창의 헤드윅 짱드윅도 궁금한데.. 아......
아무튼.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이브로부터, 토미가 헤드윅으로부터 그랬던 것 처럼, 뮤지컬 <헤드윅>을 관람하며 나도 '지식의 사과'를 받는 느낌이다. 한 회 한 회 인생을 느끼는 세포를 깨우는 사과!
아 <헤드윅>, 또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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