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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21. 21:50 Re-View/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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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Save The Green Planet! (2003)

장르: SF, 스릴러
감독: 장준환
주연: 백윤식, 신하균


참으로 이중적인 작품이다. 의도적으로 삼류와 일류의 완벽한 경계선에 서 있는, 
그래서 더 대단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극과 극으로 갈릴 수 밖에 없다. 1차원적으로 화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키치적'이라는 표현이 딱 맞겠다. 외계인 사냥꾼인 주인공, 작은 모터가 돌아가는 장난감같은 모자, 물파스를 뿌려 외계인을 공격하고 외계인은 머리카락으로 텔레파시를 보낸다는 설정도 아이들 장난같이 귀엽다. 그에 약간의 상황적 위트를 더하고 마지막으로 황당하기 짝이없는 SF적 반전 결말까지 있으니, 달짝지근하니 모양 귀여운 싸구려 냄새가 난다. 

그러나 이런 가볍고 키치적인 이미지들이 주는 메시지는 참으로 무겁고 어둡고 잔인하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이 영화를 위한 타이틀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또한, 극중 인물에 완벽하게 빙의한 배우들의 연기는 단연 최고. 백윤식, 신하균의 주연 배우들부터 황정민 배우까지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특이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풍부하게 표현 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탁월한 배우들의 연기가 이 작품의 '의도된 이중성'을 더욱 빛나게 한다.


 
 






※스포일러 주의




# 찝찝한 첫 시작, 그러나.

"사실 저놈은 안드로메다 PK-45 행성에서 온 외계인놈이야!!!"



영화는 주인공 병구와 그의 여자친구(?) 순이의 알 수 없는 대화와 알 수 없는 메모들로 화면이 가득 차며 시작한다. 초반에 등장인물 강사장을 소개하면서 외계인 드립을 치질 않나. 외계인의 텔레파시를 막기 위해 해괴한 헬멧을 쓰고 물파스로 외계인을 공격하는 등등 "지구는 내가 지킨다! 빠밤!" 삘의 행동들. 

여기까지만 본다면 포스터만 봤을 때의 첫인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뭐 이런 조악한 SF영화가 다 있어. 백윤식, 신하균 같은 배우들이 왜 이런 영화에? 등등, 그리 좋지 않은 첫인상.




인간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외계인 책을 선물하는 병구. 꼭 읽어보시라며.



그런데, 그렇게 쯧쯧 혀를 차버리고 손톱이나 깎으며 보기엔 저 '미친짓'하고 있는 병구가 완전 진지하고 절박한거다. 그 이유있는 처절함. 그 이유가 하나씩 밝혀질수록, 어른용 장난감놀이를 하는 듯한 병구의 싸이코같은 행동에 관객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랬던 것 처럼 더 이상 마냥 낄낄대며 웃지 못하게 된다. 급기야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이 오고, 바로 그때, 이 영화는 속살을 드러낸다.




# 그래. 차라리 외계인의 소행이어라.

"미친척하지마 이 미친놈아!"



차라리 외계인의 소행이라 믿고 싶은 일들이 실제로 지구에선 이미 수도 없이 일어났다. 전쟁, 학살, 기아, 무자비한 개발로 인한 지구오염 등등 영화에서 화면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참상들은 이성적인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 불가한 것들이다. 안드로메다 왕자 말 대로, 인간이 살아있는 한 그러한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이런 외계인들 손가락놀이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사회적 약자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안드로메다 외계인들이 샘플로 설정한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회적 약자가 고통받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구조 속에서 고통받는다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소리니까.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매커니즘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병구가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겠다고 나선 유일한 사람이라는 설정 자체가 이 영화가 의도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 그럼 우리는, 어디 있었나

선밴님 범인은 어케 잡나여? 뿌잉뿌잉



외계인은 병구에게 말한다. 남탓만 하며 사는 너 같은 사람들 잘 안다면서. 그 말에 병구는 아무 말도 못한다. 그러니 또 외계인은 말한다. 많이 아프지?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일부러 고통을 주는거야. 라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있는 - 이 영화를 보고있는 관객으로 대변되는 - 보통 지구인의 입장에선 뭣같은 소리 하고자빠졌네! 라고 병구의 편을 들어 줄 것이다. 보통의 지구인은 알기 때문이다. 병구와 같이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가니 사건'의 피해자들을, 그리고 우리 주위의 추운 겨울을 나는 분들을. 그 사람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알고 있다. 병구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란 "뻔 하니까." 


그러나, 그 다음 뒤따라오는 병구의 물음.

"다 알면서 어디있었는데? 내가 미쳐갈때 니들은 어디있었어? 니들이 더 나빠. 니들이 죽인거야.."




# 물파스 준비하시고, 쏘세요!
   

I WIN



결국 병구도 죽고 순이도 죽고 경찰 아저씨들도 다 죽는다. 약간의 부상은 입었지만 별 탈 없이 안드로메다로 돌아간 왕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지구를 폭파시킨다. 아. 완전 깔끔한 결말. 


 

"저 행성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 결말은, 전혀 깔끔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감독의 재기발랄한 반항이 아니었을까. 우린 아직 멀쩡한 지구에서 안 멀쩡하게 살고 있다. 갖은 도구를 모두 동원하여 외계인을 고문하는 장면에선 고문하는 병구나 고문받는 외계인이나 귀엽게만 보이는 이유는 진짜 세상이 더 잔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미친척하는 미친놈'이 사실 미친놈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 미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이 세상.



아. 나에겐 물파스라도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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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ebby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