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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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일기 The Journals Of Musan (2010)
장르: 드라마
감독: 박정범
출연: 박정범, 전용욱, 강은진 外
이 영화는 함경도 무산에서 온 '탈북자' 승철의 보잘 것 없는 일상에 대한 일기다. 맞고, 욕 먹고, 탈북자라고 무시당하고,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일하는 승철의 일상을 카메라에 덤덤하게 담아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음악 하나 없는 이 작품은 마치 승철이 손으로 쓴 일기처럼 마침표 하나로 뚝 끊겨버린다. 백지 노트에 뭉툭한 연필, 간결한 글씨체로 서걱서걱 써 내려가는 일기처럼 말이다. 사회적으로 힘 없는 이들의 일상을 그려 낸 대부분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이래도, 이래도 안 울테냐'의 화법과는 정 반대다. 그래서 더 먹먹하게 얹혀있는 영화다.

승철의 일기는 슬프다기보다는 불편하다. 125- 로 시작하는, 새터민을 뜻하는 주민번호 뒷 자리는 그가 목숨걸고 넘어왔던 3.8선보다 더 잔인한 경계선이다. 그 경계를 만드는 장본인이 내가 살고있는 이 사회이기에 보는 내내 불편하다. 순진무구한 승철의 성격 또한 불편하다. 그가 아끼는 백구와의 에피소드에서는 웃음짓다가도, 그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씬에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약게 살아도 될 텐데. 순간 깜짝 놀랐다. 연민의 감정에서 비롯된 생각이라 할지라도,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저 경계선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승철이 항상 메고 다니던 짐, 전단지 꾸러미와 항상 주눅이 든 듯한 표정과 눈빛은 비단 그의 것 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탈북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구조적으로 쫒길 수 밖에 없는 순진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 약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북한에서 배가 고파 싸움을 하다 실수로 친구를 죽였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일부러 더 정도를 걸으며 도덕적으로 살았던 승철. 남한으로 넘어와서 그렇게 사는 건 만만치 않았다. 순수하고 솔직하게 사는 데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는 하얀 백구 뿐이었다. "넌 너밖에 몰라. 그래서 친구가 없는거고 그래서 저 개새끼 물고빨고 하는거야" 라고 소리지르던 유일한 친구, 경철의 말처럼.

하지만 결국 사회는 승철을 '변하게' 했고, 경철을 배신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는 반대의 길로 걸음을 떼자 새로운 친구도 생기고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하려는 찰나, 백구가 차에 치여 죽는다. 순진함을 받아들여주던 유일한 친구였던 백구의 죽음이 의미하는 건 함께 죽어버린 승철의 순수함, 솔직함 아닐까.
축축히 젖어있는 아스팔트 위에 널부러진 백구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지나쳐 걸어가는 승철의 뒷모습, 그리고 갑자기 블랙아웃. 승철이 살았던 순수의 시대를 애도하듯, 미안하다 사죄하고 묵념하는듯한 검은색 스크린. 그리고 이내 올라오는 실화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헌정자막, 그리고 엔딩 크레딧. 엔딩 크레딧의 끝까지도 배경음악은 없다.
축축히 젖어있는 아스팔트 위에 널부러진 백구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지나쳐 걸어가는 승철의 뒷모습, 그리고 갑자기 블랙아웃. 승철이 살았던 순수의 시대를 애도하듯, 미안하다 사죄하고 묵념하는듯한 검은색 스크린. 그리고 이내 올라오는 실화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헌정자막, 그리고 엔딩 크레딧. 엔딩 크레딧의 끝까지도 배경음악은 없다.
블랙아웃 후, 마음이 그토록 무거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사회 속에서 계속 살아가게 될 그들, 그리고 나의 뒷 이야기 때문이 아닐까.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끝내 잃어버린 대가로 사회속에 완벽히 섞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마음에 딱딱하게 얹힌다. "실제 승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 자신이 승철을 연기했다던 박정범 감독. 이 영화는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친구 승철군 뿐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승철들에게 바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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