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를 쓸까 말까 하고 한 100번은 망설였던 것 같다. 처음 영화관에서 보고 받은 감동과 충격은, 다이어리에 쓰는 한줄 감상평조차 쓸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도대체 이건 뭐지? 3D 영화가 이렇게 따뜻하게 황홀할 수 있다니!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영화 하나 안에 다 담아내다니!
그날 밤,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못이루다가 이튿날 아침 다시 한번 영화관을 찾았더랬다. 한번 더 보아도 여전히 황홀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창을 켜게 된 것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 대한 생각을 부족하게나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안그러면 미어캣 산호섬처럼 영원히 영화 위에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할것 같아서.
제목은 말 그대로 '파이의 삶'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사실 파이 파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도 소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다. 파이 이야기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 안에 각자 다른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만 거대한 틀은 모두 똑같다. 누구나 신념(혹은 어떤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타인과 소통하는 사회적 동물이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주체이다. 이 인간에 대한 공통적이고도 삶에 대한 근원적 명제들은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각각의 화두가 된다.
# 신, 종교 그리고 인간
우연히 불특정 다수가 쓴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감상평을 보게 되면 종교적 색채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영화보기 힘들수도 있다는 말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종교적 색채를 띤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이는 여러가지 종교를 믿지만, 리처드 파커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파이의 믿음, 폭풍우 치는 배 속에서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고 울부짖는 어떤 대상이 특정 신이나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어떤 것에 대한 믿음자체가 '종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믿음일 지라도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말이다.
가령, '성실하게 살아야 복이 온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매사에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의 종교이다. 작게는 '한 해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봄에 꼭 벚꽃놀이를 가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벚꽃놀이를 하여 한 해를 행복하게 보낸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종교인 것이다. '종교'란 것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마음 속에 믿고 있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이 삶에 반영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게 바로 종교인 것이다. 꼭 신이 존재할 필요는 없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신념들이 곧 신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흔히 통용되는 의미의 '종교적' 영화가 아니다. 세가지 종교를 믿는 파이는 힌두교의 신에게 예수님을 소개시켜줘서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마음의 안정과 소속감을 얻는 것이 좋아 알라신을 경배한다. 파이를 어떤 종교에 온전히 소속되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파이가 믿는 '여러가지' 그 자체가 파이의 종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종교는 후에 이 작품의 가장 커다란 화두인 '믿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 리처드 파커 : 인사할 새 없이 사라지는, 내 삶을 걸었던 존재들에 대한 은유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멕시코 해변의 숲 속으로 사라지면서 파이의 기대와 달리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하면서 함께 지내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말이다. 그런 리처드 파커가 야속해 파이는 엉엉 울어버린다. "호랑이는 호랑이일 뿐, 너의 친구가 아니다. 호랑이의 눈 속에서 뭔가를 봤다면 그건 그의 영혼이 아니라 눈에 비친 너의 모습일 뿐이다."라고 이야기 했던 파이의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그는 단지 호랑이일 뿐이었다. 친구라는 관계는 파이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관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파이는 분명 리처드 파커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 말고 분명히 리처드 파커의 영혼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가 어떤 것을 보았든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돌보며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의 온 삶을 걸고 리처드 파커를 돌보았던 것이다. 후에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회상하면서 인사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며 눈물을 흘린다. 삶 전체였던 리처드 파커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파이는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고마워. 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어. 힘들었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더라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더라면.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후회를 했던 많은 기억이 떠올라 파이와 함께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기대고, 지키고, 완성하려 노력했던 지나간 사람들, 과제들, 공간들, 물건들. 정말 이상하게도 그들은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갑작스레 사라진다. 리차드 파커는 그런 존재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는지. 사라진 그 존재들이 나에게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사라지면, 미처 전하지 못한 나의 진심만이 찌꺼기로 남을 뿐이다.
#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습니까?
파이가 구출된 후 일본 선박 회사 사람들에게 해 준 현실적인 이야기와 영국 작가에게 파이가 해 준 환상적인 이야기 중, 관객이 무엇을 진실로 믿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반전영화가 될 수도, 아닐수도 있다. 또 해피엔딩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진실로 설정했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이안 감독 또한 '노 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 만큼 이 영화의 이야기는 관객, 즉 온전히 수용자의 몫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말이다.
무엇이 진짜 일어난 '사실'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는가'이다. 내가 믿는 것들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것은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것이고 앞으로 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방향을 잡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반드시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동물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니체의 말에 동감한다면, 무엇을 믿느냐는 그 사람을 규정하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색, 계>로 이어지는 이안 감독의 놀라운 필모그래피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추가함으로써 도저히 한 사람의 필모그라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욱 다채롭게 되었다. 깊은 철학이 돋보이는 이안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이 작품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된다. 최신 기술인 3D로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인 장면을 구현하여 그의 철학과 거기서 오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그의 연출력은 말할것도 없겠다.
그동안 고르기 주저하고 있었던 '내 생애 최고의 영화'에 마침내 이 영화를 올리게 되었다. 우연한 사건을 가장한 은유로 점철된 삶, 그것을 해석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라는 메시지는 평생 내가 마음속에 두어야 할 명제인것 같다. 이 영화가 반전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 2013년을 여는 첫 영화로 완벽한 선택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원작 『파이 이야기』도 읽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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