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Debby콩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2. 1. 4. 19:06 Re-View/책
반응형




은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박범신 (문학동네, 2010년)
상세보기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벌써 작년이 되어버렸지만) 박해일 배우가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러 나와서 모자를 벗어 자신의 삭발한 머리를 보여 주고는, "기가막힌 작품을 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이 얼마 후 개봉할 정지우 감독의 <은교>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작이 박범신의 은교 라는 것도. 그래서 읽었다.


내용을 간단하게 쓰자면.
순수하고 단단한 시로 세상의 칭송을 받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 이적요와 그의 문하생인 서지우, 그리고 잉적요의 집에 가끔 청소하러 오거나 말동우가 되어주는 여고생 은교의 삼각관계 스토리다. 두 남자가 모두 죽은 후, 일기와 편지 형식으로 남긴 노트를 은교와 변호사가 읽으면서 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형식이다.
 
70대 노인과 30대 후반 남성이 10대 여고생에게 품는 은밀한 사랑과 욕정, 서로의 질투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서지우가 갖는 스승의 출중한 능력에 대한 욕심과 열망, 그리고 이적요가 가지고 있는 제자에 대한 애정과 연민 또한 그에 버무려져 있다. 또한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밖으로 내세우는 정 반대의 페르소나의 위선과 가식에 대해서 문단의 작가와 평론가들에 비유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적요에게 '가질 수 없는 무엇', 즉 어리고 젊은 은교에 대한 욕망과 사랑이 있었다면 서지우에게 '가질 수 없는 무엇'이란 스승의 출중한 실력이었다. 서지우 역시 스승과 마찬가지로 은교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서지우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건 스승이었다. 서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원하는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하여 섣불리 손을 뻗지 못한다. '가질 수 없는 무엇'이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이렇게 두 남자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묘사는 공감할만하였다. 특히 이적요 그만의 세계를 침범한 서지우에 대한 분노와 은교에 대한 사랑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서지우의 욕망과 좌절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욕망이라는 인간의 본성 앞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수식어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은교다.


그녀는 단지 두 남자의 욕망의 대상으로만 그려지고 있다. 그녀는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한 두 남자 모두에게 자신을 '제공'하기만 할 뿐, 굉장히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은교가 변호사에게 둘의 일기장을 태우면서 "두 남자가 사실은 서로를 가장 사랑했다"고 말한다. 삼류 에로소설로 갈 수도 있었던 두 남자의 십대 소녀를 향한 집착을, 친절하게도 "사실은 그게 아니랍니다"라고 '해설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본다면, 은교는 이적요와 서지우의 욕망의 '대상'이며 동시에 서로에 대한 질투를 유발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욕망과 질투는 사랑이 없으면 일지도 않는 감정. 이적요와 서지우 둘은 증오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이었네. 라고 하는 것이다. 은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밀고 당기기 하는 두 남자는 사실 사랑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기 한 셈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작위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은교가 훗날 이적요의 일기와 편지를 읽고 울면서 하는 말, "나는 할아부지가 그렇게 나를 가지고 싶어하는지 몰랐어요.. 이깟게 뭐라고.. 그냥 말을 하지.." 이 말. 이 대사로서 은교는 영원히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욕망, 그것도 밖으로 내보였을 때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욕망이라 하면 성性적 욕망일 것이다. 금기시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쳐 둔 '여고생'이라는 설정은 이해하나 '너도 좋고 나도 좋으니 그냥 다 줄게요' 하는 은교라는 캐릭터 설정이 조금은 불쾌하다. 또한 욕망하는 두 인간에 공감하게 된 계기가 그 장치의 직접적인 해설 때문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장치가 너무 뻔히 보인다는 점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한달 반 만에 다 썼다고 했다. 나는 이 책을 한나절 반 만에 다 읽었다. 흥미진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대체 무슨 생각인지가 궁금해서. 앞에서 말한 '장치'를 본 다음에는 그 장치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궁금해서. 끝까지 아니길 바랬지만 끝끝내 은교는 '문란하고 천진한 여고생'에 그치고 말았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검은 건 누구나 안다. 작가는 그걸 드러내고 극대화시켜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그에 대해 공감은 된다. 하지만 그 뿐, 책을 덮은 후의 감동과 여운은 없었다.

어떤 포인트로 영화가 만들어질지 참 궁금하다. 그냥, 원작보다 '감동있는' 작품이 탄생하길 바래 본다.
반응형
posted by Debby콩